한국 노인 고용률 세계 1위의 숨겨진 진실: 자랑할 일일까, 부끄러운 일일까?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노인들이 사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놀랍게도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로 OECD 국가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인 13.6%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심지어 고령화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25.3%)보다도 10%포인트나 높은 놀라운 결과입니다.
하지만 잠깐, 이 수치를 보고 우리가 박수를 쳐야 할까요? 아니면 깊은 고민에 빠져야 할까요?
900만 명 중 330만 명이 일터로 향하는 이유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약 900만 명입니다. 이 중 무려 330만 명 이상이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이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왔습니다. 2012년 30.1%였던 고용률이 2022년에는 36.2%까지 올라갔고, 2023년에는 37.3%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65세 이상 취업자의 35.4%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기계조작원, 운수업, 창고업, 도소매업 등 대부분이 저숙련, 단순노동 분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건업과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 29.3%, 사업시설관리 서비스업에서 14.1%, 도소매와 운수, 창고, 숙박, 음식점업에서 11.3%가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용 형태도 불안정하기 그지없습니다. 임금근로자 중 61.2%가 비정규직이고, 취업자의 절반인 49.4%는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월 65만원으로 살아가기
이들이 왜 이렇게 힘든 일자리라도 붙잡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노인들의 소득 현실을 봐야 합니다.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연금 소득은 고작 65만 원에서 80만 원 수준입니다. 2024년 1인 가구 기준 최저 생계비가 134만 원인데, 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인구의 중위 수급액이 월 41만 9천 원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전체의 40.4%가 월 25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를 받고, 19.9%는 아예 25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있습니다. 월 200만 원 이상 받는 고령자는 전체의 5.4%에 불과합니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근로와 사업소득을 통해 65세 이상 노인의 연간 개인소득은 2023년 기준 2,164만 원, 월 약 180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2020년 1,558만 원 대비 38.8% 증가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서 나오는 소득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노인들
한국의 66세 이상 소득 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입니다. 이는 OECD 평균 14.2%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로, 역시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빈곤한 노인의 연평균 시장소득은 135만 원, 연평균 가처분소득은 804만 원으로 월 약 67만 원에 불과합니다. 빈곤하지 않은 노인의 연 1,797만 원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 노인들은 자산은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2023년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순자산은 4억 5,540만 원이고, 부동산 자산 보유율은 97%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 자산들이 현금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부동산은 부자, 소득은 빈자'라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특수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65세 이상 취업률은 25.2%로 우리보다 낮지만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노인 빈곤율은 20%로 우리의 절반 수준입니다. 연금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어 연금소득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65세 이상 취업률은 18.6%로 우리보다 낮지만, 공적연금이 미흡해 생활비 보충을 위해 일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노인 빈곤율은 22.8%로 우리보다는 낮습니다.
가장 대조적인 것은 유럽 국가들입니다. 영국은 10.9%, 독일은 7.1%의 노인 취업률을 보이며, 노인 빈곤율은 5~12%로 매우 낮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아이슬란드 3.1%, 노르웨이 3.8% 등 5% 미만의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금이 가처분소득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노후 보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대응책은?
정부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 약 110만 개의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2027년까지 노인 인구의 10%가 일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예산도 2조 1,847억 원으로 대폭 증액했습니다.
일자리 유형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익활동형에서 벗어나 사회서비스형, 민간형 일자리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신노년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참여 욕구에 맞춘 역량활용형, 민간형 일자리 비중을 2027년까지 40%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기업들에게도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령자친화기업으로 지정받으면 창업형은 최대 3억 원, 인증형은 최대 2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60세 이상 근로자를 신규 채용하거나 고용을 유지한 사업주에게는 분기별로 30만 원씩 최대 2년간 지원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
결국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운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노후 보장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330만 명의 고령 취업자 한 명 한 명의 뒤에는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입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근로와 사업소득 비중이 높아지고, 자녀 등 가족에게 의존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노력도 계속되고 있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단순히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노인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충분한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과제일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65세 이상 고용률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